정답 없는 질문의 해답을 찾아서
부산고등법원 민사2부 재판연구원 세 사람의 동행
글. 편집실 사진. 홍승진
기록 앞에 선 첫날,
그 설렘과 무게 사이
설렘과 긴장이 교차하는 첫 출근 날 누구에게나 그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민사2부의 문을 처음 열던 날, 김영대, 정광민, 강경빈 재판연구원 세 사람의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각오와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다.
김영대첫 출근 날에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보다도 ‘과연 내가 이 업무를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더 컸습니다. 특히 고등법원 사건은 다루는 쟁점이 복잡하고 기록도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바짝 긴장했죠. 다만 맡은 사건 하나하나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마음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정광민1년 차에 민사부를 경험했지만, 작년에는 형사부에 있었습니다. 1년 만에 다시 민사 사건을 마주하려니 긴장감과 약간의 두려움도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고등법원에서의 민사 사건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오는 신선한 설렘도 있었습니다.
강경빈저 역시 1년 차에는 민사부를 경험했고 2년 차에는 형사와 행정 재판부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동안 민사 법리를 조금 잊은 부분도 있었고, 선배들로부터 고등법원의 민사 사건은 지방법원의 민사 사건보다 규모가 더 크고 난도가 높다는 이야기를 들어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긴장감을 가졌습니다. 그래도 성실하게 잘 해내겠다는 각오로 고등법원 민사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어느덧 재판연구원 3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적지 않은 민형사 사건을 마주하면서 이제는 나름대로 노하우도 생기고 업무에도 익숙해졌지만, 처음 임용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예상과 다른 현실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책 속의 법과 법정 안의 법은 같은 언어를 쓰고 있어도 그 무게가 전혀 달랐다.
정광민로스쿨에서는 확정된 사실관계 혹은 전형적인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대법원 판례와 법리 중심으로만 학습했어요. 하지만 실제 일을 시작해 보니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리보다 ‘사실인정’이라는 것을 느꼈죠. 엇갈리는 주장 속에서 누구의 말이 타당하고 어떤 사실이 맞는지를 가려내는 과정이 가장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김영대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공부할 때는 법조문과 판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업무에서는 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고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를 종합하여 전체적인 사건의 흐름을 파악하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아 가고 있어요.
강경빈구체적인 사실관계뿐만 아니라 구체적 타당성 등 더 넓은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 것과 동시에 기록 자체를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 공부할 때와는 큰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시험과 달리 정제된 기록만 오는 것도 아니었고요. 더욱이 쌍방 대리인이 붙어있는 경우엔 당사자 모두 아예 이유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 기존에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을 넘어 누구의 주장이 더 법리적으로 타당한지를 검토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습니다.
재판연구원의 업무는 기록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 한 줄의 기록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기록을 검토하는 세 사람은 어느 한순간도 집중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산더미 같은 기록 앞에서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도 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버티게 해주는 각자만의 힘이 있었다.
강경빈재판연구원으로서 ‘사회의 분쟁을 해결한다’라는 소명을 가지는 것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을 하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힘에 부칠 때는 집에서 휴식하거나 운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컨디션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김영대한 사건에 담긴 당사자들의 삶과 고민을 생각하면 책임감이 더욱 강해집니다. 맡은 업무를 성실히 마무리했을 때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은 제가 업무에 다시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됩니다.
정광민스트레스 관리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는 운동으로 답답한 마음을 풀고, 주말에는 부산 바닷가에 놀러 가거나 동기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습니다.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던 것들이 다 날아가는 기분입니다.
힘든 순간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버팀목 중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바로 동료였다. 같은 고민을 나누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 동기들의 존재는 이들에게 더없이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정광민재판연구원 생활에 있어 동기가 참 소중합니다. 업무 중 모르는 것이 있으면 중앙 테이블에 모여 다 같이 고민하기도 하고, 힘든 점이 있으면 털어놓으면서 서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김영대저 혼자 고민해서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새로운 시각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업무적인 조언뿐 아니라 사소한 고민까지 편하게 나눌 수 있어 큰 힘이 되고 있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강경빈누군가 문제에 부딪히면 내 일이 아니더라도 발 벗고 나서서 함께 리서치하고 고민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업무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생활면에서도 의지가 됩니다. 대부분이 부산에 연고가 없어서인지, 같이 식사하거나 취미생활을 함께하면서 삶을 나누고 있어요.
위기 그리고 극복,
한 계단씩 올라가는 성장의 시간
하나의 사건 안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그 안에서 쟁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참된 결론을 내리기 위해 사건을 파고드는 일은 언제나 위기의 연속이다. 처음 보는 법을 마주하거나 끝이 보이지 않는 기록 앞에 손이 멈춰버리는 순간은, 세 사람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광민로스쿨에서 배워보지 못한 법이나 생전 처음 보는 법을 적용해야 할 때는 아예 처음부터 공부해야 해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또 법리적으로만 보면 일방이 승소하는 것이 맞지만 구체적 타당성 측면에서 다른 결론이 고민되는 사건들을 마주할 때는 고민이 더욱 깊어지곤 합니다.
김영대저는 쟁점이 많고 기록이 방대한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 어디서부터 검토해야 할지 막막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여러 법률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사건에서는 충분히 이해하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죠.
강경빈법리 문제가 아닌 두꺼운 기록에서 사실을 확정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이고, 사건 자체가 조금 산만하게 진행된 경우에는 이를 정리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특히 복잡한 수식을 바탕으로 엑셀 자료를 정리해야 한다거나, 전문 지식이 필요한 감정 결과를 검토하는 것은 법리 공부와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어요.
그러나 언제나 해답은 있었다. 때로는 선배의 조언을 따라, 때로는 동기와의 밤샘 연구와 함께, 때로는 오롯하게 기록과 씨름하며 각자에게 주어진 위기를 하나씩 헤쳐 나갔다.
정광민같은 방을 쓰는 동기 연구원들과 의논하고 부장님을 찾아가 함께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동시에 관련 책과 선례들을 찾아보며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렇게 최선을 다한 만큼 스스로 내린 결론에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부딪힌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김영대큰 사건을 우선 작은 쟁점 단위로 나누어 정리하면서 차근차근 접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동료 연구원들과 부장님의 조언을 구하고 관련 판례와 문헌을 반복해서 검토하니 조금씩 방향을 잡아갈 수 있었습니다.
강경빈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때는 부장님들께 조언을 구하거나 연구원들에게 의견을 물어가며 기준을 잡아갔습니다. 엑셀이나 전문 지식은 그냥 따로 공부하는 것 말고는 해결 방법이 없었습니다. 다만 의료나 건설과 같은 분야의 경우 AI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방대한 기록과 수많은 쟁점 앞에서 참된 정의를 찾아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끝내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또 한 계단 성장했다는 뿌듯함이 가슴에 남았다. 이제는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을 마주하더라도 어떻게든 해결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정광민깊이 고민했던 사건들은 유독 오랫동안 기억에 남습니다. 이후 다른 사건에서 비슷한 고민을 마주할 때 좋은 참고가 되었고, 해결했을 때의 뿌듯함이 다음 일을 해나가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김영대예전에는 어려운 사건을 마주하면 부담감부터 느꼈지만, 지금은 충분히 검토하고 고민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낯선 쟁점을 접하더라도 이전보다 차분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경빈사건에 접근하는 방법이나 기록을 정리하는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어려운 사건을 맡더라도 결국 실마리는 있다는 생각을 갖고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걸음씩 나아가는
법조인의 시간
예전에는 막막하기만 했던 기록들도 이제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두려움보다 일단 부딪혀 보는 용기, 복잡한 쟁점 속에서 방향을 잡아가는 감각, 나만의 기준과 체계를 세워가는 힘. 입사 초기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세 사람은 분명 더 단단해져 있었다.
정광민예전에는 어려운 사건을 마주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시작해서 부딪혀 보자는 마음이 먼저 들어요.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그 방향성이 보이기 시작할 때 이전에 비해 분명히 성장했음을 느낍니다.
김영대입사 초기에는 새로운 사건을 접할 때마다 불안감이 컸지만, 지금은 사건의 핵심 쟁점을 파악하고 검토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훨씬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경력이 쌓인 덕분인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나름의 기준과 체계가 생긴 것 같아요.
강경빈기록을 읽는 법, 그리고 글을 쓰는 법, 업무를 정리해 진행하는 방법 등이 효율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단순히 연구원으로서가 아니라 법조인으로서도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재판연구원으로서 지내 온 법원에서의 시간은 법조인으로서의 성장에만 그치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법원 구성원들의 모습은 이들에게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가르쳐 주고 있다.
정광민법원의 모든 직원분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거창한 목표보다도 저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삶의 가치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중입니다.
김영대어떤 일이든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보다 꾸준히 성실하게 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느끼고 있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분들을 볼 때면 책임감과 성실함의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강경빈민원, 기록 제조, 행정 업무 등 저와 함께 일하는 직원 한 분 한 분이 각자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는 것을 항상 느낍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자연스럽게 생기더라고요.
함께 성장한 시간만큼, 서로에게 남기고 싶은 모습도 선명해졌다. 마지막으로 세 사람에게 어떤 재판연구원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세 사람의 대답은 저마다 달랐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공통된 바람이 담겨 있었다.
정광민동료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즐겁거나 힘든 상황을 모두 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동료가 되고 싶습니다. 언제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아군 같은 재판연구원으로 기억된다면 좋겠습니다.
김영대업무적으로는 신뢰할 수 있고, 인간적으로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동료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어려운 순간에도 함께 고민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강경빈업무적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조언을 구할 수 있고, 연구원 생활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해 온 정광민, 김영대, 강경빈 재판연구원. 그 성장의 끝에는 언제나 서로가 있었다. 믿을 수 있는 동료, 기댈 수 있는 아군. 그것이 이들이 함께 만들어 온 가장 단단한 성장의 결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