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올림픽’ WLIC와 ‘국제 법률정보의 요람’ IALL에서 만나는 사법의 미래
글. 이혜진 조사심의관(법원도서관)
법원도서관은 일반 도서는 물론 판결과 법률 문헌을 함께 다루는 서고인 만큼,
전통적인 서지학과 고도의 법률 전문성을 모두 필요로 합니다.
특히 공신력 있는 법률정보를 정확하게 수집, 보존,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법원도서관의 역할은 여느 도서관과는 다른 무게를 지닙니다.
이에 법원도서관은 유수의 국제 학술대회를 통해
문헌정보학 및 법률정보학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전문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법원도서관이 매년 참가해 온 두 개의 국제 학술대회,
IFLA 세계도서관정보대회(WLIC)와 IALL 연례 학술 코스를 소개합니다.
법률정보의 신뢰성을 지키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두 국제대회가 던진 화두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법원도서관은 국내 최대 규모의 법률전문도서관으로, 판결을 비롯하여 법률 문헌 등 핵심 법률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하는 지식의 보고(寶庫)입니다. 사법부 본연의 기능인 재판 업무를 최전선에서 지원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법률정보 접근성을 제고하는 공공적 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과거 법관들의 회고에 따르면, 판결문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각급 법원 도서실에 소장된 법률 서적과 ‘하급심 판결철’을 일일이 열람해야 했고, 난해한 쟁점에 부딪힐 때마다 전문 사서의 서지 탐색 지원에 의존하여야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당연하게 사용하는 종합법률정보시스템이나 전산화된 도서 검색 서비스가 정착되기 이전의 풍경입니다.
이처럼 법원도서관의 업무는 단순한 장서 관리에 그치지 않고, 전통적인 서지학과 고도의 법률 전문성이 결합된 복합적인 영역입니다. 나아가 지식정보 환경의 급격한 디지털 전환에 발맞추어 첨단 정보기술(ICT)과의 융합도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원도서관은 글로벌 문헌정보학계의 흐름과 전문 분야인 법률정보학의 연구 성과 등을 기민하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매년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의 ‘세계도서관정보대회(World Library and Information Congress, WLIC)’와 국제법률도서관협회(IALL)의 ‘연례 학술 코스(Annual Course)’에 참가하여 학술적·실무적 지평을 넓히고 있습니다.
세계도서관정보대회(WLIC)는 국제도서관협회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Library Associations and Institutions, IFLA)이 주최하는 도서관·정보 서비스 분야 최고의 국제 학술대회입니다.
1927년 설립된 IFLA는 150여 개국의 도서관 협회와 기관, 정보 전문가를 대변하는 비정부기구(NGO)입니다. IFLA 헌장에 명시된 WLIC의 목적은 전 세계 지식정보 접근권 신장, 지적 자유 수호, 문화유산 보존 및 고품질 정보 서비스 표준 확립이며,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UN-SDGs) 달성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본 대회는 매년 100여 개국에서 국립·공공·대학·의회·전문도서관 사서, 정보과학자, 시스템 개발자, 정책 입안자 등 3,000~5,000여 명이 참가하는 지식정보 생태계의 대표적 연례 행사입니다.
최근 WLIC는 ‘영감, 참여, 역량 강화, 연결(Inspire, Engage, Enable, Connect)’, ‘협력과 실천으로서의 도서관(Let’s work together, Let’s Library)’, ‘지식의 결합과 미래 구축(Uniting Knowledge, Building the Future)’ 등의 의제를 다루어 왔습니다. 특히 올해는 우리나라 부산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도서관(Libraries Powering Transformation)’을 주제로 성황리에 개최되었으며, 법원도서관 백규재 조사심의관이 법원도서관의 연혁과 『판례공보』 발간을 비롯한 공신력 있는 사법 정보 생산 체계를 소개해 국제적 주목을 받았습니다.
국제법률도서관협회(International Association of Law Libraries, IALL)가 주관하는 연례 학술대회는 전 세계 법률정보 전문가들이 모이는 전문 협력망입니다.
1959년 미국 뉴욕에서 창설된 IALL은 외국법·비교법·국제법(FCIL: Foreign, Comparative, and International Law) 자료의 수집 및 보존과 접근성 증진을 지향합니다. IALL 연례 학술대회의 공식 명칭인 ‘국제법 및 법률정보 연례 학술 코스(Annual Course on International Law and Legal Information)’에서 알 수 있듯이 본 학술대회는 단순 회의를 넘어 개최국의 실정법 체계와 사법제도, 국제법 쟁점, 법률정보기술을 심도 있게 탐구하는 연수 프로그램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가 대상 또한 법률도서관의 사서에 국한되지 않고 법원, 로스쿨, 로펌, 국제사법기구의 법률정보 실무자와 연구자 150~250여 명으로 폭넓게 구성됩니다.
그간의 주제를 살펴보면 2022년 미국 팰로앨토(Palo Alto)에서의 ‘법, 사법 및 기술에 대한 미국과 국제적 접근: 과거의 교훈과 미래 전략(U.S. and International Approaches to Law, Justice and Technology: Learning from the past and strategies for the future)’, 2023년 스위스 제네바에서의 ‘제네바의 다자주의와 국제법(Like Clockwork? Multilateralism and International Law in Geneva)’, 2024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의 ‘바이킹부터 자율운항선박까지: 법의 과거, 현재, 미래(From Vikings to Autonomous ships: Past, Present and Future Law in a Norwegian and International Perspective)’, 2025년 미국 휴스턴에서의 ‘세계를 향한 법적 관문(Space City Houston: Legal Gateway to the World, and Beyond)’, 그리고 올해 영국 케임브리지의 ‘변화하는 정치와 법적 현실: 미래를 향한 승부수(Shifting Politics and Legal Realities - Taking a punt into the future)’에 이르기까지, 각 개최지의 특색과 결부된 법적 현안을 지속적으로 다루어 왔습니다.
이들 국제대회에서 공통으로 부각되는 핵심 화두는 당연히 사법 영역의 인공지능(AI) 혁신일 것입니다.
생성형 AI가 법률 서비스에 접목될 때 발생하는 허위 정보 생성, 즉 ‘환각(Hallucination)’ 현상은 사법 신뢰를 훼손하는 중대한 위협입니다. 무분별한 웹 크롤링 데이터로는 법적 진실성을 담보할 수 없기에, AI 학습에 필수적인 공신력 있는 데이터(Ground-Truth)를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합니다. 즉, 방대한 대법원 및 각급 법원의 판결과 법률자료를 정확한 서지정보와 표준 메타데이터로 정교화하는 ‘사법 데이터 큐레이터’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지게 됩니다.
아울러 IFLA의 ‘정보 평등권’과 IALL의 ‘국제 사법 교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재판 공개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개인정보침해를 방지할 수 있는 고도화된 비식별화 기술을 사법 데이터베이스에 정착시켜야 합니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판결과 사법 자료를 영문 서지 및 글로벌 표준 규격으로 가공함으로써 전 세계 법조계와 연구진이 한국 사법 데이터에 원활히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할 의무도 있습니다.
결국 법원도서관의 지속적인 국제 학술 교류는 법과 기술이 격변하는 대전환기에 대한민국 사법부의 지식 자산을 가장 공신력 있는 형태로 관리·공유하기 위한 학술적·실무적 투자입니다. 나아가 이는 대한민국 사법 체계와 법률정보 시스템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