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러닝 도전기
글.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손우정 행정관
주지하다시피 러닝이 유행이다. 나름 인터넷 4단(5단이라 생각했으나, 최근 같이 근무하는 ‘다빈찡’의 계장님 ‘돼지 파티1) 아세요?’라는 기습공격에 답을 하지 못하여 1단을 낮추었다)을 자부하는 나 역시 유행의 흐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도시 러닝 크루의 민폐랄까, 인스타그램에 인증샷을 찍는 이들의 속내를 대충 감안하는 나는 이 흐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비싼 소고기를 굽다가 ‘어, 탄다’라고 하면서 금방 뒤집는 것처럼, 어느 날 러닝에 대한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2025년 11월 4일 이후로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날은 딱히 무언가를 하기에 특별히 좋은 날씨도, 안 좋은 날씨도 아닌 우리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야말로 보통날이었다.
사실 2년마다 찾아오는 건강검진을 대비하고, 헤어지자는 의사를 명백히 하였음에도 허리를 착 감싸고 있는 러브핸들2)과의 악연을 해소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해보았다. 러닝 초보에게 도움 되는 유명한 모 어플과 함께 말이다.
이 어플의 8주 완성 30분 달리기 코스를 도전한 것이다.
다시 말한다. 300분이 아니다. 8주 완성 30분 달리기이다.
처음은 1분 뛰기 2분 걷기부터 시작한다. 1분 뛰기다. 그러나 3주 정도 하다가 우측 무릎 밑 거위발 건염으로 두 차례 포기 이후에 ‘이 나이에 무슨 러닝이고… 아, 짜증나’ 이 생각이 나를 계속 붙잡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움직인 것이다. ‘정답은 180입니다’라는 어느 유투버의 말을 듣고.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다음 편에….
놀라지 마시라. 최근 유행한(?) 넷플릭스의 〈맨 끝줄 소년〉을 흉내 내어 보았다.
필자가 작문 과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전문 작가도 아니고, 〈법원사람들〉 팀과 밀양지원 직원들에게 민폐만 안 끼치길 바랄 뿐인 사람인데, 다음 편이 있을 리가 없지 아니한가?
여튼 나를 움직이게 한 것은 정답이라는 단어였다.
필자는 은근히 나이가 많다. 사실 나이가 너무 무거워서 어떤 날은 숨이 콱 막히기도 한다. 이런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였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아직 젊다. 다행이다.
살면서 정답이라는 글자는 안정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준다. 나의 특유한 반골 기질일 수도 있는데, 정답 말고 다른 방법으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데도 정답이라고 부르고 획일적으로 강제한다는 관념이 계속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다. 정답에 끌렸다고 할까? 뭐 좀 들어볼까? 뭐 그런 정도의 생각이었다.
‘정답은 180입니다.’라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케이던스가 1분에 180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1분에 양발을 180번 교차하며 앞으로 내 뻗어서 달린다는 말이다. 세계마라톤선수권자, 한국선수권자도 그렇다고 한다. (여기서 ‘에이 뭐야, 다 아는 거잖아’라고 하시면서 주당 러닝 마일리지 좀 쌓은 분들은 빨리 이번 호의 재미난 다른 글들을 읽으시길.)
그 당시의 내가 이 케이던스 180이 가능했겠는가?
답은 가능할 수도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데 묘미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부분에서 흉내만 내어도 되는 분야가 있는데, 그 흉내를 그럭저럭 내기만 하면 남들보다 은근히 앞서나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잘하고자 하는 의지 없이 말이다.
예를 들어 더 나은 성과를 위해서 굳이 개별 주식 투자를 하지 않고 그냥 개인연금계좌에서 S&P 500, 나스닥 100을을 각각 반반 사고 ‘내도 투자합니다.’라고 흉내 내는 것 역시 ‘케이던스 180이 정답이다’라는 명제를 나에게 적용함에 있어서는 같은 원리인 것이다. 아주 뛰어난 성과를 의욕 하지 않고 대충 흉내 내어도 잘하려고 애쓰는 개별 주식 투자자보다 성과가 좋은 경우가 많다는 말이다.
러닝으로 다시 리턴하면.
이 글을 읽는 우리 직원분들 및 가족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케이던스 180이 정답이라는데 나는 지금 측정해 보니 150~165 사이다. 그럼 더 빨리 뛰어야겠네. 우와 이거 생각보다 힘드네. 금방 숨이 차는데 이거 쉽지 않은데…. 어떻게 180으로 만들지?’
포인트는, 만약 공부를 예로 든다면 공부해서 기출 문제를 풀어보니 ‘나는 합격 점수에 못 미치네. 좀 더 공부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기출 문제의 정답을 외우고, 즉 공부한 것처럼 흉내 내고(단순 암기가 공부가 아니라는 의미보다는 본질적인 학습이 아니라는 의미로 썼다) 다시 기출 문제를 푸는 것처럼, 먼저 무조건 180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것이다. 즉 보폭을 평상시 달리던 것보다 확 줄이면(제자리 뛰기보다 조금만 더 발 간격을 벌리는 것이다) 누구라도 케이던스 180이 가능하다. 이렇게 뛰면 발을 여러 번 빨리 움직이더라도 총거리가 짧으니 결국 옆에서 파워 워킹을 하는 할머니보다 늦은 속도로 움직이게 되겠지만, 애초에 우리는 달리기를 잘하려고 하지 않고 그럭저럭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기에 할머니보다 늦은 속도라도 상관이 없고 부끄럽지도 않다.
이렇게 달리면 다른 말로 ‘존2러닝’, ‘슬로우 러닝’이 된다.3)
우리(최소한 나)처럼 운동에 하등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달리게 해 줄 수 있는 요인이 이것이다. 다리 간격이 좁으니 우선은 무릎 부상도 잘 생기지 않는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게 되시는 분들도 한두 번 정도 도전해 보시라. 생각보다 쉽게 계속 잘 달릴 수 있다.
이렇게 달리기 시작해서 어느 정도가 되면 우리는 애초에 잘 달리려고 한 것이 아니고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즉 아주 늦은 속도로 달리니까, 나를 괴롭히는 ① 내가 실수한 문건 처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② 착한 과장님에게 쓸데없이 개겨서 후회하는 나의 아픈 마음, ③ 좁쌀만 한 문제를 농구공처럼 크게 걱정하는 마음 등이 왔다가 사라지는 동적 명상의 상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부차적으로는 체중이 감량되며, 러브핸들과는 작별 준비를 시작하게 되고, 새롭게 나오는 턱선을 만날 수 있다.
끝으로 필자는 약 8개월 동안 9kg이 감량되었고, 10km를 1시간 이내로 달려 보았으며, 최장 거리로는 15km도 달려 본 사람이 되었다.4)
여러분들도 흉내 한번 내어 보시라.
나의 흉내 내기는 당분간 계속될 거 같다.
1) 각주까지 찾아오신 분들에게 미리 알려드린다. 돼지 파티란 다양한 고칼로리의 음식(치킨, 떡볶이, 마라탕-본문의 ‘다빈찡’이 좋아한다 등)을 푸짐하게 차려 놓고 배가 부를 때까지 마음껏 먹고 즐기는 모임을 말한다.
2) 오해하지 마시라 지금 독자들이 만지고 계시는 뱃살 그 부분이다.
3) 같은 사무실의 ‘향기 계장’에게 슬로우 러닝에 대해서 가끔 말했는데 애 키우면서도 고생하는 그녀도 최근 ‘귀에서 피나요’라는 말과 함께 러닝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계속하길 빌어 본다.
4) 같이 근무하는 ‘갑이 오빠’(오해 금지, 필자는 남자다)가 같이 뛰자고 하는데 나의 러닝은 애초에 혼자에 특화되어 있음을 이 자리를 빌려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