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기억] Racing The Planet 칠레 아타카마 사막을 달리다

Racing The Planet 

칠레 아타카마 사막을 

달리다


글.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빈태욱 지원장



1. 움직이는 축제: 여정의 서막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 주어서 젊은 시절 한 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다.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 헤밍웨이 1950년 인터뷰 중


헤밍웨이가 사랑한 도시, 파리가 움직이는 축제가 되어 평생 그를 따라다닌 것처럼 내게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이 움직이는 축제가 되어 평생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지금도 눈만 감으면, 쏟아질 듯한 아타카마 사막의 압도적인 밝기와 숫자의 별들이, 끊임없이 오르던 샌드듄과 샌드듄에서 내려다보던 풍경이, 끝없이 이어지던 소금 평원이, 아름다운 사막의 일출과 일몰이, 만년설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계곡이, 사막에서 핀 작은 꽃들이, 바람과 세월이 만들어 낸 달의 계곡이 떠오르며 가슴을 설레게 하고 행복하게 하니까.


2024년 7월 말, 나는 인천에서 칠레 산티아고로 향하는 비행기 표를 결제했다. 한국에서 땅을 파고 수직으로 내려가면 나온다는 지구 정 반대편의 나라.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산티아고까지, 하늘에 떠 있는 시간만 꼬박 하루가 넘는 대장정이었다. 참가비는 성과상여금에 달하는 거액이었고 환율은 무섭게 치솟고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절박함이 나를 움직였다. 결제 버튼을 누르던 그날의 떨림은 사막의 폭염보다 뜨거웠다.

아타카마 사막 마라톤은 2025년 3월 30일부터 4월 5일까지 6박 7일 동안 250km를 달리는 서바이벌 경기다. 주최 측이 제공하는 텐트와 물을 제외한 나머지 식량과 필수 장비 40여 가지를 모두 스스로 짊어지고 완주해야 한다. 아타카마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알려져 있다. 낮에는 나무 그늘 하나 없는 40도의 폭염이 지면을 달구지만, 새벽에는 기온이 0도 근처로 급강하하여 침낭 속에서도 이가 부딪힐 정도로 춥다. 



2. 지구 반대편으로의 긴 여행 (2025. 3. 26. ~ 27.)


지구 반대편으로 향한다는 설렘과 남미의 불안한 치안에 대한 걱정이 교차했다. 사막에 있는 일주일 동안 급격한 체중 감소가 예견되었기에, 공항 라운지에서부터 ‘살찌는 걱정’을 내려놓고 배를 채웠다. 

인천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12시간, 다시 5시간의 대기 후 산티아고까지 10시간, 그리고 다시 국내선을 갈아타고 칼라마 공항에 내려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까지 버스로 이동하기까지 총 44시간이 소요되었다. 

대회 전날, 마을 전체가 갑자기 정전되는 소동이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랜턴을 들고 화장실을 가려 방을 나섰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문명의 불빛이 꺼진 아타카마 사막 위로 은하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정전이라는 불편함이 선물한 그 압도적인 우주 앞에서, 나는 다시금 내가 얼마나 운 좋은 사람인지, 그리고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실감했다.


3. 레인보우 밸리의 첫 밤 (2025. 3. 29.)


해발 3,200m에 위치한 제1숙영지 ‘레인보우 밸리’에 도착하자 노란색 대회 현수막과 각국의 국기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는 내 심박수를 사정 없이 끌어올렸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장비 검사 결과 내 배낭의 무게는 14kg. 어깨를 짓누르는 묵직한 무게에 잠시 걱정이 앞섰지만, “매 순간을 즐기자”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내가 배정된 텐트에는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이 모였다. 4대 사막을 이미 완주하고 다시 도전에 나선 52세 스위스 아저씨 라인홀트, 놀라운 체력으로 여성 1위를 차지한 미국의 엘리스, 그리고 나의 권유로 함께 오게 된 후배 이재현 등 6명이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우리는 레이스 중에는 결코 맛볼 수 없는 한국식 낙지덮밥과 현지 피자로 ‘최후의 만찬’을 즐기며 사막의 첫 밤을 맞이했다. 텐트 밖은 영하의 추위였지만, 텐트 안은 완주를 향한 열기로 뜨거웠다.



4. 고난의 시작: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Stage 1: 35.3km)


새벽 5시, 옆 텐트 대만 선수들의 활기찬 웃음소리가 고요한 사막의 새벽을 깨웠다. 첫날은 해발 3,200m에서 시작해 2,600m까지 내려가는 비교적 수월한 내리막 코스였다. 과거 물길이었던 바위 협곡 사이를 지나며 자연이 수만 년 동안 빚어낸 기묘한 조형물들에 감탄하며 사진 셔터를 누르기에 바빴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상황이 급변했다.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이 시작되었고, 14kg의 배낭은 마치 어깨를 자르는 듯한 통증을 유발했다. 사막에서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이 명확히 구분된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지, 무엇을 더 버려야 할지 고민하며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길 위에서 일본인 에미를 만났다. 그녀의 신발은 이미 밑창이 덜렁거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테이프와 끈으로 그것을 고정하고 묵묵히 걷고 있었다. 나라면 아마 신발 탓을 하며 주저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뒷모습은 나에게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이라는 진리를 몸소 가르쳐주었다.

캠프에 도착해서 쉬고 있을 때 72세 비키 할머니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고 있었다. 작은 체구에 굽은 허리로 첫 스테이지를 마친 그녀의 모습에 전 참가자가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가슴이 먹먹했다. 나는 첫 스테이지를 마친 후 무게를 줄이려 보조 배터리와 약통, 맥가이버 칼까지 재활용 통에 던져버렸다. 비워진 배낭만큼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5. 계곡과 산은 시가 되고 (Stage 2: 37.5km)


둘째 날은 아타카마 레이스의 백미였다. 안데스의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차가운 협곡을 20여 차례나 가로질러야 했다. 신발을 벗고 물을 건너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나는 주저 없이 신발을 신은 채 차디찬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젖은 신발 안으로 미세한 모래가 들어와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지만, 능선 위에서 바라본 붉은 산군과 설산의 조화는 그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아타카마의 상징인 거대한 듄(모래언덕)을 미끄러지듯 달려 내려가는 순간은 이번 대회 최고의 카타르시스였다. 듄에서 만난 독일인 피아(Pia)는 휴대폰도 없이 그저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위대한 장관을 눈과 마음속에 온전히 저장하고 싶다고 했다. “위대한 자연이 빚어낸 하나의 아름다운 시.” 나는 둘째 날의 일기에 이 풍경을 그렇게 정의했다.


6. 사막의 순례자: 까미노 데 아타카마 (Stage 3: 40.9km)


셋째 날 아침, 이제는 물리기 시작한 라면밥과 짜파게티로 끼니를 때웠다. 대회 20주년을 기념해 스태프인 스테파니 아주머니가 직접 내려준 달콤한 커피가 아니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잠시 인터넷 신호가 잡히는 구간에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막의 풍경은 눈물겹게 아름다웠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더 사무쳤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2~3분마다 모자에 물을 뿌려 열기를 식히며 끝없는 평원을 걸었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이 길은 2013년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메세타 평원을 떠올리게 했다. 몸의 고통이 극에 달할 때쯤 도착한 피니시 라인 근처에는 수경 농장의 노천탕이 있었다. 그곳에서 배영 자세로 둥둥 떠서 바라본 푸른 하늘은 레이스 중 경험한 가장 완벽한 해방감이었다. 하지만 그 밤, 차가운 물기운 때문인지 독한 코감기가 찾아왔다. 선블록을 바른 코 아랫부분만 지워져 윗입술만 탔지만, 듄 너머로 지는 이국적인 일몰은 그 모든 고생을 보상해 주기에 충분했다.


7. 악마의 발톱과 달리는 이유 (Stage 4: 44.4km)


넷째 날은 이번 대회의 최대 고비인 ‘Extremely Difficult’ 구간이었다. 소금과 진흙이 굳어 마치 ‘악마의 발톱’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소금 평원이 12.5km나 펼쳐졌다. 지면은 울퉁불퉁해 발을 디딜 때마다 발목이 꺾일 듯 위태로웠고, 복사열은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탈락자가 발생했다.

오후 2시, 태양의 정점에서 묵언 수행자처럼 그 평원을 건넜다. 속은 메스꺼웠고 근육은 비명을 질렀다. 극한의 한계 상황에서 나는 자문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왜 달리는가?’ 명예나 건강 같은 거창한 이유는 사라졌다. 결국 남은 답은 하나였다. “나는 내 두 발로 지구라는 행성을 온전히 느끼는 이 여행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우리는 그 지옥 같은 소금 평원을 통과하고, 사막을 건너왔다는 의미로 피니시에서 스틱으로 노를 젓는 조정 경기 세리머니를 했다.



8. 롱데이: 달의 계곡에서의 야간 비행 (Stage 5: 72km)


마침내 마의 72km 구간인 ‘롱데이(Long March)’가 밝았다. NASA가 달 탐사 로봇 실험을 할 만큼 기묘하고 삭막한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을 지나는 날이다. 45도 경사의 거대한 모래 언덕을 지그재그로 오를 때는 발이 무릎까지 빠져 한 발을 내디디면 반 발이 뒤로 밀려났다.

사투 끝에 올라선 듄의 정상. 그곳에서 내려다본 아타카마의 파노라마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장엄했다. 나는 한국에서 친구들이 보내온 응원 메시지를 작은 메모지에 적어 사막의 바람 속으로 날려 보냈다. 친구들의 간절한 염원이 이 광활한 공간에 닿기를 바랐다. 

해가 지고 기온이 급강하할 무렵, 헤드랜턴을 켜고 본격적인 야간 러닝에 돌입했다. 한밤중 달의 계곡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새벽 2시가 넘어 저 멀리 숙영지의 북소리가 들렸을 때, 팀 코리아 5명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완주의 기쁨을 누렸다.


9. 감동의 피날레: 산 페드로 입성 (Stage 6: 18.7km)


롱데이 다음 날, 72km를 무려 25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걸어 들어온 69세 빌(Bill)의 모습에 모든 참가자가 텐트 밖으로 나와 축하해 주었다. 허리가 90도로 굽어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은 그의 완주는 그 어떤 선수의 기록보다 위대했다.

마지막 날, 산 페드로 시내로 향하는 18.7km의 길. 발바닥의 모든 물집이 터져 한 걸음이 바늘 위를 걷는 것 같았지만, 마을 입구에서 관광객들과 현지인들이 보내주는 “브라보!” 소리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우리는 대형 태극기를 활짝 펼쳐 들고 위풍당당하게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7일 만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깨끗한 침대에 누웠을 때, 비로소 이 꿈같은 레이스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10. 에필로그: 말하는 대로


2018년 나미브 사막 완주 후 나누었던 “다음엔 아타카마에 같이 가자”라는 후배와의 가벼운 약속이 나를 이 머나먼 칠레까지 이끌었다. 대회를 준비했던 8개월의 설렘과 훈련의 시간은 레이스 그 자체만큼이나 내 삶을 풍요롭게 채워주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미브 사막과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을 내 두 발로 건넜으니, 이제 내 마음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하라 사막을 꿈꾼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의 삶에도, ‘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이루어지는 행운과 용기가 함께하기를. 사막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내딛는 오늘의 한 걸음이 곧 새로운 사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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