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온기] 출근하지 않아도 추앙받는 삶 고양이에게 배우는 게으름의 미학

출근하지 않아도 추앙받는 삶

고양이에게 

배우는 게으름의 미학


글. 서울남부지방법원 조아영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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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앞에 검은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가 오늘도 마중을 나왔다. 길고양이답지 않게 검은 털에서 윤기가 흐른다. 영국의 근위병처럼 충실한 자세로 출근하는 직원들을 맞는다. 한 발 다가서려 하면 금세 “미야옹~” 하며 경계심을 표시한다. 적당한 거리를 존중해 달라는 듯 턱시도 고양이는 쉽사리 거리를 좁히지 않는다. 법원관리대원 옆에서 먹이를 달라고 가르릉거린다. 장난감으로 놀아주는 응대에 앞발을 휘두르며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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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 일인지 요즘은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내 주변만 그런 건지, 반려동물이 일상화된 세상인지 모르겠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자신이 키우는 반려묘의 사진을 보여주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고양이를 돌보는 일은 강아지만큼 분주하진 않은 모양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사진 속 고양이들도 포실포실하게 살이 올라 있다. 햇빛이 거실 마룻바닥 위로 해시계처럼 길게 내리쬐면 그곳이 자신의 영역인 양 바닥에 나른하게 누워 낮잠을 즐긴다. 이쯤 되면 “다음 생엔 이렇게 지극정성 돌보아 주는 가정집의 냥이로 태어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든다. 출근도 하지 않고, 돈도 벌어오지 않는데 존재만으로 추앙받는 묘의 삶.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퇴근길에 역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 작은 규모의 인쇄소에도 고양이가 산다. 얼룩 젖소 무늬를 가진 녀석은 늘 심드렁한 표정으로 행인을 훑는다. 미묘라 할 순 없는 찐빵처럼 눌린 얼굴이지만 그래도 애교가 있다. 가끔 인쇄소 밖으로 나들이를 나오면 녀석과 마주친다. 그럴 때면 내 다리 옆으로 엉덩이를 들이밀고 부비면서 스킨십을 한다. 우리는 다른 언어를 쓰고 있지만 서로에게 호감의 표시를 한다. 인쇄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매번 쭈그려 앉아 유리창을 ‘톡톡’ 두들겨 인사를 한다. 앞발을 들어서 나의 부름에 화답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마음씨 좋은 사장님이 사료를 듬뿍 놓아둔 그릇에 눈길이 간다. 또 다른 생명체를 위해 가진 것을 나누는 넉넉한 씀씀이가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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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편 주차장 담벼락 위에서도 고양이가 종종 일광욕을 즐긴다. 담의 높이가 제법 높은 편인데도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 투실한 몸을 담벼락에 잘도 걸치고 있다. 요즘 구청 측에서 길고양이들을 위해 추적 시스템을 달아놓는 것인지 목에는 알 수 없는 인식표가 메달처럼 걸려 있다. 램프처럼 빨갛게 점멸하는 불빛에 호기심이 일렁인다. 사뿐사뿐 다가가서 목에 달고 있는 신호 장치를 좀 더 살피고 싶다. 그러나 녀석은 금세 양쪽 귀를 쫑긋하며 기척을 눈치챈다. 이렇게 예민한 반사신경을 가졌는데 무슨 수로 목에 인식표를 채운 것일까. 요즘 동네 골목마다 캣맘들이 길냥이들을 위해 보금자리와 캔 사료를 갖다 둔다. 새끼를 밴 것처럼 배가 뽈록하게 불러 있다. 이제 탐정처럼 고양이의 뒤를 쫓던 발걸음을 집으로 돌린다. 집에서 키울 수 없는 고양이에 대한 사심을 밖에서 가득 채우고 돌아간다.


어느 겨울의 끝 무렵, 수풀 속에서 반딧불 같은 노란 동공을 보고 발길을 멈췄다. 땅거미가 내리자 행인을 불러세우는 검은 고양이. 날렵한 몸이 까매서 ‘탄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내가 보도블록을 걷는 동안 탄이는 지형물에 몸을 숨긴 채 사냥감을 쫓듯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왔다. 눈동자는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시 수풀 속에서 노란 광채를 드러내며 앞서갔다. 걷는 동안 “탄아~”하고 부르면 “먀옹” 화답까지 해 가면서 우리는 150미터가량을 동행했다. 수풀길이 끊기자 큰길가에서 녀석은 걸음을 멈췄고, 그 앞에는 편의점이 있었다. 나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매대를 훑었다. 츄르나 캔 사료를 찾고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인간이 먹는 참치캔밖에 없었다. 결국 빈손으로 나오게 됐다. 탄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마치 검사라도 하듯 빤히 나를 쳐다보더니 몸을 홱 돌려 도도하게 걸어갔다.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뒤지면서 탄이를 쫓았다. 천하장사 소시지 하나가 손에 잡혀서 껍질을 깐 후에 녀석의 콧잔등에 대고 흔들었다. 츄르가 아님을 알아챈 탄이는 꼬리를 세우고 유유히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 탄이와 동네에서 다시 마주친 일은 없었다. 아마 그때 녀석이 내가 빈손임에도 불구하고 발뒤꿈치를 밟고 따라와 주었다면 지금쯤 나는 집사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양이를 쫓는 시선은 어느새 세계의 길고양이들로까지 확장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가 그리스의 섬들을 배경으로 한 대목에 오래 머문 적이 있다. 언젠가 가고 싶은 나라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그리스 섬을 고르고 싶다. 바다를 둘러싼 동네의 지형도 좋고, 파란색 지붕에 하얀 건물, 그리고 새하얀 담벼락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다. 시원한 풍경의 한편엔 고양이들이 주인처럼 거리를 거닐고 있다. 사람이 주인일까 고양이가 주인일까. 어쨌든 두 생명체가 어울리는 모습이 정겹다. 그곳에서는 서두르는 일 없이 느지막하게 일어나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내려 벤치에 앉아 느긋이 걸어가는 고양이를 언제까지고 바라보며 유유자적 하루를 보낼 것이다. 게으른 그리스의 한량으로 사는 것도 꽤 근사한 일일 것 같다. 물론 당장 그곳으로 떠날 수는 없겠지만, 출근길 정문에서 맞아주는 턱시도 고양이와 인쇄소의 얼룩 고양이, 그리고 탄이 덕분에 나는 종종 일상의 걸음을 늦추는 법을 생각해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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