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글.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이서혜 주무관
좋아하는 영화를 묻는 질문 하나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오래 간직해 온 시간과 애정을 꺼내놓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첫 발령지인 이곳 김천에서의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다. 서툴게 묻고 부딪히며 쌓아온 시간들. 아직은 사소해 보이는 그 서툰 날들도 언젠가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이유로 남지 않을까.
애정은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좋아하는 영화를 묻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따라온다. 제목 하나만 듣고 끝날 줄 알았던 대화는 곧잘 다른 이야기로 번진다. 오래 기억하는 장면, 그 영화를 보던 시절, 함께 본 사람, 그때의 고민 같은 것들이 따라온다. 그러다 잠깐 시선이 멀어질 때가 있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사람은 잠시 그 영화를 보던 때로 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그저 대화를 이어가기 좋은 질문처럼 보였다. 그런데 질문 하나에 오래 간직해 온 시간과 애정들이 돌아왔다. 이야기 끝에 누군가는 기억 속 한 시절의 아쉬움을 꺼내놓기도 했고, 누군가는 다시 돌아와 오래 고른 제목 하나를 적어주기도 했다.
어떤 영화는 함께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의 기억으로 남아있었고, 어떤 영화는 오래 좋아해 온 것들을 설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기보다 그냥 좋았다는 말로 오래 남은 마음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렇게 돌아온 대답들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영화에 자신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제는 영화 제목보다 그 사람이 왜 그 영화를 아직 기억하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내게 영화는 보고 나면 끝나는 것에 가까웠다. 영화를 두고 이야기하는 일도 익숙하지 않았고, 어떻게 좋아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두 시간 가까이 한 이야기에 머무르는 일도, 보고 난 뒤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도 쉽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영화가 주는 의미가 달라지게 된 것은 많이 보게 되어서가 아니라, 보고 난 뒤의 말을 듣게 되면서부터였다. 어떤 영화가 좋았다는 말보다 오래 남는 것은, 왜 그 영화가 아직도 좋은지 설명하려는 사람의 말이었다.
누군가는 여러 번 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했고, 누군가는 등장인물에 자신의 시간을 겹쳐 이야기하기도 했다. 어떤 말에는 그 때의 공기와 기분이 오래 남아 있었다.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영화보다 먼저,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이 보이는 것 같았다.
좋아해 온 것이 있다는 건 단순히 취향이 있다는 말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것을 오래 보고, 다시 떠올리고, 누군가에게 설명할 만큼 곁에 두었다는 뜻이지 않을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기에 부럽고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래 좋아해 온 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지나온 날들이 조금씩 쌓여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묻고 배우며 다가가는 시간
내가 오래 곁에 둔 것들은 취향이나 애정보다는 준비의 시간에 가까웠다.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보기보다 해야 할 것을 먼저 생각했고, 좋아하는 것을 오래 들여다보기보다 눈앞의 하루를 견디고 넘기는 데 더 익숙했다. 그때는 그것이 무엇으로 남을지 알지 못한 채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지나온 시간이었다. 어쩌면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제는 누군가가 오래 곁에 둔 것들이 조금씩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김천에서 보낸 처음의 날들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출근길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길의 빛을 보았고, 혼자였던 출근길에는 조금씩 익숙한 얼굴들이 늘어났다. 점심시간에 오가던 짧은 대화, 커피를 사러 가는 길에 보았던 작은 옥수수나무, 처음 김천에 왔을 때 쌓여 있던 눈과 어느새 그 자리를 대신한 꽃들까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장면들이 어느 순간 김천에서의 시간으로 남고 있었다. 아직은 서툰 적응의 시간에 가깝지만, 이 날들도 내 안에 조금씩 남고 있는 것만 같다.
사실 합격을 하고 일을 시작하면, 이전보다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시험에 붙었다는 사실이 나를 어딘가 완성된 사람처럼 만들어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첫 발령지 김천에 와서 알게 된 것은, 끝이라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다시 매일 모르는 것들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업무도, 사람을 대하는 법도,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법도 서툴렀다. 이제는 내가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넘긴 일이 결국 누군가의 다음 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를 해내고도 쉽게 마음 놓기 어렵기도 했다. 배울수록 지나간 일들이 다르게 보였고, 해냈다고 생각한 일에서도 놓친 부분이 보였다.
매일의 일은 생각보다 많은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질문은 늘 제때의 모양을 갖추지 못했다. 말은 정리되기도 전에 나오곤 했고, 다 지나간 뒤에야 떠오르기도 했다. 그럴수록 말을 꺼내기 전 망설이는 일도 많아졌다. 너무 자주 묻는 것 같아 옆자리에 있으면서도 알리미로 질문을 보낸 날도 있었다. 그런 내 서툰 질문의 모양보다 그 안에 담긴 잘하고 싶은 마음을 먼저 보아주는 분들이 곁에 있었다. 설명은 때로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길어진 말의 끝에는 아무렇지 않은 농담이 따라오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서툰 시간을 받아주시는 분들 곁에서 나는 업무뿐만 아니라 서툰 시간을 견디고 대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김천에 와서 내게 남고 있는 건 대단한 기준이나 단단한 태도라기보다, 묻고 적고 다시 해보던 날들에 가깝다. 지나간 일을 돌아보며 놓친 것을 깨닫고, 정리하고, 다시 배우는 날들 말이다. 아직은 이 시간이 무엇으로 남을지 알 수 없어 사소하게만 느껴지지만, 그래도 이런 시간이 쌓이면 언젠가는 내 안에 남은 것을 꺼내 말하는 일도 지금보다 덜 어렵지 않을까.
서툰 시간들이 우리에게 남긴 것
예전에는 무언가를 쌓는다는 말을 조금 거창하게 생각했다. 오래 좋아해 온 취향, 단단한 기준, 흔들리지 않는 태도 같은 것들은 처음부터 목표가 분명한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오래 간직한 애정은 어쩌면 처음부터 선명했던 것이 아니라, 서툰 시간들이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남은 것이 아닐까. 쌓인다는 것은 멋진 날들만 모이는 일이 아니라, 서툴게 묻고, 어설프게 하고, 다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 날 다시 해보는 시간들까지 사라지지 않고 나에게 남는 일인 것 같다.
아직 나는 영화도, 일도, 사람도 잘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좋은 말을 오래 간직하는 법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그래도 이제는 누군가가 좋아하는 영화를 말할 때, 그 제목 뒤에 함께 딸려오는 시간들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말하게 된다면, 그 대답 안에는 아마 김천에서 보낸 이 시간들도 담겨 있지 않을까.
그래서 말인데,
영화 좋아하세요?